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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문헌 목록 〉21. 21世 〉56. <부정공>죽하공휘욱현유사(竹下公諱旭鉉遺事)
1. 문헌 목록 〉21. 21世 〉58. <부정공>난파휘병규유사(欄坡諱炳奎遺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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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부정공>성재공휘병익유사(醒齋公諱秉翼遺事)
醒齋公諱秉翼遺事 公諱秉翼字士奉自號醒齋節愍公後孝子 贈敎官進士諱善浩之子也公胚胎前光生得異禀白幼性度寬厚有容物量孝謹兼至父母甚安生致其樂病致其憂靡不用極遭喪也執制甚嚴恨身單而幸其有諸妹撫愛踰常凡其婚嫁公所主之資裝之備一倍加意而隨時節問遺命兒孫進候終其身不懈事叔父進士公一如所生晨昏省視風雨不爲之沮家有異味必先饋後口往往於私室有客局戯方張而聞戶外有進士公曳履聖則忙手歛局出迎下庭如未嘗棋焉及其捐世倍切號痛曰從今以徃不復聞家庭誨責白首依仰將於何地敎後進各盡義方爲之置齋延師而時有傍近來學者亦無不容受善遇積年漢師縱子明經期望甚殷而雖數奇未成名公之心力於斯盡矣每儉歲周恤尤爲腆念丙子一也戊子一也時家中賓客傾一郡使來者咸得其歡而賢豪之過風流可掬戊戌宋淵齋先生南遊訪公於桐江舊廬喜其生同年月一倍加敬因與講禮乙巳臘月三十日考終于寝亦先生殉道之日也人皆異之 高宗壬寅以耆社恩授通政階若有銓曹注擬之望而竟未果 성재공휘병익유사(醒齋公諱秉翼遺事) 공의 휘는 秉翼이요, 자는 士奉이며, 호는 醒齋고 절민공의 후 효자 증 교관 진사 善浩의 아들이시다. 공을 잉태하기 전 서광이 비쳤는데 태어나면서부터 특이한 천품을 얻어 성정과 도량이 너그럽고 두터워 물건을 포용할 아량이 있고 효도와 공경이 함께 지극하여 부모가 심히 편안하였다. 생전에는 부모를 즐겁게 하고 병중에는 그 근심을 나타내 정성을 다하며, 喪事를 당하여 집예를 심히 엄하게 하였다. 독신이 한스러우나 다행히 그 여러 누이가 있어 극진히 어루만지고 사랑하여 무릇 그 혼인을 공이 주장하여 치장의 구비에 특별히 영념하고, 때와 절기를 따라 안부를 물으며 兒孫에게 遺命하여 찾아가 문안하게 하고, 그 몸이 마치도록 게을리 하지 아니하였다. 숙부 진사공을 소생 부모같이 섬겨 주야로 문안드림을 풍우에도 폐하지 아니하고 집에 다른 음식이 있으면 반드시 먼저 보내고 뒤에 먹으며 간혹 손님이 와서 바둑을 즐기다가 문 밖에 진사공이 오신 기미가 있으면 바둑을 거두고 뜰에 내려와 모시었다. 숙부가 세상을 떠나자 부르짖어 통곡을 배나 더하며 가로되 「이 뒤부터는 다시 가정에 가르침과 견책을 들을 수 없으니 백수(白首)가 장차 어느 곳에 의지하리오.」 하였다. 후진을 가르치며 각기 의로운 방법을 다하여 서재를 설치하여 스승을 맞아오고 때로 근처에서 배우러 온 자가 있으면 수용하지 아니함이 없이 착한 대우를 했으며 여러 해 동안 서울에 아들을 보내 明經科에 기대가 크더니 운수가 기괴하여 成名을 못 하였으나 공의 마음과 힘을 이에 다하였다. 매양 흉년에 두루 구휼하고 더욱 후하게 생각한 것은 병자년과 무자년 兩年이요, 때에 온 군내에서 찾아온 손님을 다 그 환심을 얻도록 접대하며 어진 선비와 호걸의 과찬에는 풍류의 진경을 가히 보였다. 무술년에 宋淵齋 선생이 남쪽을 유람할 때에 공을 桐江舊廬로 찾으니 공이 그 동갑임을 기뻐하여 돈후하게 경대하고 더불어 예를 강론하였다. 을사년 十二월 三十일 정침에서 고종하니, 이 날이 곧 송 선생이 순절한 날이라 사람이 다 이상하게 생각하였다. 고종(高宗) 임인년(一九0三)에 기사(耆社)의 은혜로 통정의 제수가 있었는데 이조(銓曹)의 의망이 있을 듯 했으나 시행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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